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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대화/아이의 말

우리도 윗집 할매에게 가보자!

by 관심부자 2021. 11. 25.


층간소음 문제에 자유롭지 못한 나날들이다. 오후 6-7시만 넘어가도 아이가 뛰는 소리에 예민해진다. 뛰지마, 매트위로 올라가, 조용히 걸어, 뛰어 내리면 안돼. 온갖 금지어를 내뱉으며 저녁시간을 보내고 나면 집에서 아이는 얼마나 답답할지, 조금은 측은하기도 하다. 누가 나에게 집에서 걸음걸이에 대해 끊임없이 지적한다면, 어른들은 일종의 강박증에 걸릴지도 모른다.

지금 집에 이사온지 2년째, 평수를 넓혀오다 보니 기존 집에서 쓰던 매트가 모자라 거실의 반쪽만 매트, 반쪽은 맨바닥 그대로였다. 하루의 저녁식사에는 부지런하지만, 집안 살림에는 느림보인 나인지라 매트를 사는 날을 계속 미루고만 있던 중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금요일 저녁, 가족끼리 기름지고 푸짐한 저녁을 먹은 뒤 정리를 하다보니 저녁 10시가 됐다. 설거지를 하느라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지못한 그 30여분이 이어진 뒤, 날카로운 현관 벨소리가 들렸다.

인터폰으로 본 문 밖의 사람은 처음보는 중년의 여성, 모든 맥락으로 볼 때 그는 '아랫집 사람'이었다. 큰 눈에 말끔하게 정리된 머리모양으로 볼 때 나에게 험한말을 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문을 열고 어떤말을 해야할지 참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남에게 죄송하다, 아쉬운 소리를 하는 건 아무리 나이가 먹어도 참 어려운 일이다. 무조건 죄송하다고 해야지, 마음먹고 문을 열었다.

띠리리- , 안녕하세요. 아래층에서 왔는데요. 새로 이사오신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윗집이 정말 조용했거든요. 요 며칠 쿵쿵 시끄러워서 새로 이사왔나보다 짐작은 했어요. 그런데 오늘 너무 저녁늦게까지 소리가 심해서 이렇게 올라왔어요. 실은 우리 아들이 이런건 꼭 한번 올라가서 말해야 한다고 해서, 그래서 왔네요... 저도 아이 키워봐서 알긴 하는데, 너무 시끄러워요. (힐끗 안쪽을 보고) 매트를 쫙 깔아야지, 매트가 없네. 그래서 소리가 크게 들리나봐요.

나는 변명의 여지 없이 고개를 연거푸 숙이며 죄송하다, 매트는 바로 깔거다, 오늘만 식사가 좀 늦어져서 이렇게 되었다, 다시는 불편을 안끼치겠다... 등 이야기를 하며 상황을 마무리 했다. 그 모습을 모두 본 우리 아이는 내 뒤에 서있었다. 그리고 해 맑게 물었다. "저 사람이 밑에 집 할매야?"

층간소음으로 살인까지 생길 정도면, 심야시간의 소음은 인간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주는 건 맞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 고통은 '불확실성', 대체 언제까지 이 소음을 견디면 되는지, 5분인지 1시간인지 알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불확실하게 그 시간을 견뎌야 하는 인내심은 금방 바닥나고 만다.

그날 저녁 아이에게 밑에 집 할머니가 찾아오실 정도로 우리가 시끄럽게 한 건 잘못된거라 단단히 일러주었다. 그 뒤로도 아이가 뛰어다닐 때 마다 "밑에 집 할매 오신다! 이제 조용히 하자!" 라고 마치 도깨비나 망태할아버지처럼 소환해왔다. 그랬더니 어느 날은 아이가 특이한 제안을 해왔다.

"엄마, 밑에 집 할매는 우리집에 왔잖아~ 그런데 우리는 한 번도 우리 윗 집 할매한테는 안가봤잖아. 우리도 가보자!"

마치 서로 마실을 오가는 사이라고 생각했던걸까? 지금까지 몇 달 동안 무서운 존재로서 밑에 집 할매를 언급했던 나의 전략이 무효로 돌아갔다. 그래, 우리도 시간이 되면 윗집 할머니 한테 한 번 인사하러 가자, 그래그래~ 층간소음의 민감함을 알리없는 아이의 말을 들어보니, 어쩌면 별 용건 없이 윗집 아래집에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오늘도 조마조마한 엄마 마음을 알기는 한건지, 너의 순수한 뻔뻔함에 피식 웃는 하루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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