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의 공식적 이름은 임금근로자, 피고용인 등이다. 본인이 주인인 사업이나 장사에는 정년이 없지만, 피고용인은 누구든지 만료일이 있다. 정규직이라면 법적으로 만료일을 임의로 당기거나 줄이거나 할 수 없다. 하지만 항상 제도보다 압도적인 문화가 있기 마련이다. 요즘 사기업 기준으로는 40초반에는 부장승진, 팀장임명으로 한 번의 갈림길에 서고, 50세가 될 쯤 임원이 될 수 있느냐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수준인 것 같다.
코로나 이후 부쩍 경제적 자유, 파이프라인, 조기은퇴, 파이어족이란 단어가 자주 눈에 띈다. 언제나 피고용인의 길은 단 하나의 목적지(정년퇴임 또는 퇴사)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유투브를 통해 그런 고민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콘텐츠가 많아진다. 경제적 자유를 얻고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의 생생한 경험담이 흘러 넘친다. 마치 은퇴, 퇴직 즉 '언젠가 우리는 회사에서 짤린다'는 명제가 오랫동안 금기어처럼 사회에 봉인되어 있다가 문을 열자 와르르 쏟아나오는 것 같다.
오래전에 세바시 강연에 나왔던 카드사 직원 이동수 씨, "언젠간 짤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 라는 문장을 컴퓨터 모니터에 자필로 써서 보란듯이 붙여놓았다. ㅎㅎ 웃기고 통쾌하고 괴짜같다, 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그리고 '정말 맞는말이다'하는 생각이 이어서 들었다.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혜안을 가질 수 있었을까? 나보다 시야가 더 넓은 사람들의 말을 참고할 수 있어서 행운이다.
나는 올해 이직을 했다. 신입사원으로 들어가 10년 넘게 다녔던 회사를 떠나 또 다른 '회사'로 옮겼다. 처음 퇴사 의사를 밝혔을 때, 선배들이 많이 해준말, "어딜가나 다 똑같아, 그냥 여기다녀." 회사원에서 회사원이 되는게 별다를게 없다는 것 쯤은 나도안다. 그럼에도 이직을 선택한 이유는 '내가 만든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가진게 없어서 너무나 열심히 했던 지난 10년의 세월이 나에게 감옥이 되어, 더 더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할 까봐 두려웠다. 주변의 기대감도 높아졌다. 만족시키지 못하면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될 까봐, 불안 해 했고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긴장과 예민함이 높은 상태로 일을 했다. 야근을 자주 하지는 않았지만, 출근과 동시에 빠르고 많은 일의 흐름 때문에 퇴근 후에는 나 자신을 위해 어떠한 시간도 갖지 못했다.
하루에 가진 내 에너지의 95%는 모두 일에 쏟아 부어서 나머지 시간은 단 5%만을 가지고 살았다. 내 인생의 계획, 스스로의 꿈과 미래 등은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고 생각하는 게 무서웠다. 그래서 더 일에 몰입 했었나 싶다. 큰 에너지를 쏟아서 만든 결과물은 또 짐이 되어 넘어서야 할 산처럼 내 앞에 나타났다. 물론 재밌고 큰 성취를 이룬 시간들이었다. 그저 문득 내 인생에서 '회사일'을 조금 덜어내야겠다, 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이직한 곳도 결국 회사다. 나는 여전히 피고용인이다. 하지만 내 스스로 만든 감옥이 없다. 오버해서 조직이 원하는 성과를 내야하는 압박도 덜 하다. 열심히 일하고 모든 역할에 충실히 임해도 퇴근 후 에너지가 남는다. 내 모든 생산적 에너지를 회사에 투입하지 않아도 되어서 블로그도 시작했다. 요즘 살 맛이 난다. 즐겁고 자유롭다.
일하는 게 버겁지 않고, 내 삶도 평온하다. 새로운 걸 하고 싶고, 실행할 힘이 있다. 그리고 아래의 글귀를 가끔씩 되새김질한다. "언젠간 짤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 이렇게 위로가 되는 말이 있을까?
아이를 키우는 회사원 블로거의 [아이와 나눈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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